처녀도 스테이터스라능!!!
아놔 지금 처녀 무시하나효

음훼훼...처녀도 스테이터스라능!!!




아인님 글보면서 갑자기 생각나서리...주위에서 꼭 처녀 강조하는 남자들 보면 이런타입아니면 정작 본인은 체리가 아닌경우라서 공감이 가네요. 남자가 25살까지 청백지신을 유지한다면 신선이된다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그런 분 찾기가 쉽지 않을듯...
본인도 남자인지라 솔까말 처녀가 좋긴 하지만...그렇다고 당당하게 처녀가 아닌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 이건 좀 아닌듯 함.


결국 하고 싶은 말은 '너님이나 잘하세요'



by Boris | 2009/03/17 23:39 | 트랙백 | 덧글(3)
박지성이 프로그래머였다면...(박지성에게 악플을 다는 사람들에게)

박지성을 그냥 축구선수라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일반 회사원...그래 비교할거 프로그래머라고 해보자.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는 공고 학생이었다. 그의 학교에서는 나름 실력이 있는 편이라 경시대회에 참가도 하고 장학퀴즈에도 나갈 수는 있지만 1등은 하지 못한다. 졸업 후 취직을 하기 위해 여러 국내 기업들에 이력서를 쓰지만 번번히 탈락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본의 2류 회사에 눈에 띄어서 그곳에 취직하게 되고 거기서 그는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 2류 기업을 1류 기업을 탈바꿈 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에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팀장 히동구는 국제전시회에 출품할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박지성을 영입하고, 박지성은 팀이 전시회 4위를 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된다. 히동구는 박지성이 너무 맘에든 나머지 전시회 종료 후 자신이 속한 기업인 퀄컴에 데려온다. 처음 퀄컴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의 입사 동기인 영표와 비교를 당하지만 2년 후 당당하게 퀄컴의 중심축인 프로그래머가 된다. 한편 점점 노쇠화하는 기업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유망주를 찾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서퍼기 팀장과 애플의 무팀장은 퀄컴의 유능한 인재 박지성을 알게 되고 그를 영입하기 위해 낚시질을 한다. 하지만 서퍼기 팀장의 적절한 떡밥 투척으로 박지성은 마이크로소프트에 그것도 개발팀의 주력으로 입사하게 된다. 주위사람들은 처음에 어디 듣보잡 공고의 듣보잡 학생이었던 박지성의 마이크로소프트 입사를 놀라워 하고 축하해 주지만 점점 그의 단점들을 지적한다. '그는 여러 프로그램 활용능력이 팀동료인 루니나 호나우두에 비해 부족하다' , '그가 할 줄 아는건 단지 불철주야 디버깅 하는 것 뿐이다' '그는 윈도우즈 me 한글판의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영입했을 뿐이다' 라는 식의 평가가 계속된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도 이렇게 완벽한 디버깅을 할 줄 아는 인재가 박지성밖에 없기 때문에 서퍼기 팀장은 계속 그를 중용한다. 그는 Windows 7 의 개발 당시에도 팀내에서 많은 궂은 일을 도맡아 했지만, 사람들은 그가 Windows 7 발표회장에 나오지 않았다느니 그는 만들어내진 못하고 고치기만 할 뿐이라며 그의 프로그래머로서의 자질을 깎아내리기 바쁘다. 그의 연봉은 개발팀내에서 10번째이고 전세계적으로도 이만큼 대우를 받는 프로그래머는 극소수이다.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써본거...비평이 아니라 비난을 하고 싶다면 악플을 다는 본인의 인생부터 악플을 달으라고 해주고 싶었음.

by Boris | 2009/02/25 19:55 | 일상 | 트랙백 | 덧글(1)
패닉, 이적, 김진표, 긱스, 노바소닉......(1)


 
1. Intro : Panic is Coming
 2. 아무도
 3. 너에게 독백
 4. 달팽이
 5. 다시 처음부터 다시
 6. 왼손잡이
 7. 더...
 8. 기다리다
 9. 안녕
10. 다시처음부터 다시


폭탄머리를 하고 전혀 눈이 보이지 않는 까아만 썬글라스를 쓴 사람이 여러 모니터에서 동시에 등장하며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면서 자기 머리를 잠궈 달라고 노래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일거다. 그 때 당시에 내 입에서는 '뭐 저런 또라이거 다 있지?' 란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김진표는 제외) 
좋게 말하면 파격적인 거고 그냥 얘기하자면 미친 짓이었다. 가요는 잘 듣지 않았지만 가요톰10은 꾸준히 시청했던 나에게 이들은 그냥 또라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걸 좀 다르게 말하자면 지금까지 음악을 들으면서 이렇게 시각적으로나 가사에서 나에게 이정도의 커다란 임펙트를 준 '또라이'는 한명도 없었다라고 할 수 있겠다.(윤상과 신해철의 듀오 노댄스라던지 삐삐롱스타킹도 새로운 맛은 있었지만 쇼크라고 할 것 까지는 없었다.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는건 주주클럽정도?)

 그렇게 그들은 나에게 또라이라는 인상을 강렬하게 준 채 소리소문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그냥 살아가던 중 마지막 초등학교 겨울 무렵, 어느새 이들은 달팽이란 노래로 가요톱10의 톱을 노리는 그룹으로 성장했다.(그룹이라 하기엔 김진표는 '여전히' 약한 인상)
내 머릿속의 또라이가 또 다시 어이없는 제목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했을 때 이번에는 또 뭘까하고 들어봤는데 '기억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라고 하는 가사를 듣는 순간...난 이들을 또라이에서 영원한 형님으로 상향조정했다. 나는 그 해 최초로 음반이란 걸 샀다. 

 그 때 당시 가요계에서 가장 큰 이슈는 자살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故 서지원씨의 문제였다. 그에 따른 파급효과 때문인지, 음악이 좋아서인지, 동정심 때문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노래는 확실히 좋았다. 서지원 2집은 소장중이고 가끔 연주도 한다.) '내 눈물 모아'와 'I miss you'가 둘다 차트에서 상위를 기록했었다. 이에 따라 자연스레 패닉 VS 서지원의 구도가 이루어졌는데 확실히 나는 패닉의 편이었다. 당시 반친구들이 모두 서지원에 목매고 있을 때 나는 학예회 때 오르간에 맞춰서 패닉의 달팽이를 불렀다. 어떤 여자애가 '그게 그렇게 좋니?' 라고 물었을 때 나는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 그룹에 대한 사랑이 지금까지 이어질거라고는 나도 예상치 못했다....-_-;

 아직도 나는 패닉을 좋아한다. (그러나 팬사이트에서 나의 존재는 안티인지 단순 빠돌이 인지 포지션이 확실치 않다. 지독한 애증이라고 해야하나 이건 계속해서 포스팅 될 패닉 편에서 참고하시길)아마 그 때 당시의 여자애가 나에게 와서 '아직도 패닉을 좋아하니?' 이렇게 묻는다면 나는 '여전히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것이다. 이적은 아저씨가 됐고 김진표는 한번의 이혼을 겪고 재혼한 풍운아이지만 이들의 포스는 여전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 나는 이들의 팬일 것 같다. 그래서 내 이글루스의 버진은 이들에게 바치기로 한다. 계속되는 포스팅도 기대하시라~~(꼐속)
by Boris | 2009/02/09 20:35 | 음악
이글루스 시작하다
역시 싸이보다는 확장성도 좋고 트랙백이 되는 이쪽이 훠얼~~씬 매력적임. 핸드폰이 법인이라 가입하기 힘든줄 알았더니 의외로 쉽게 가입.

좋아 이제 시작이라구 한번 가보자!!
by Boris | 2009/02/08 19:23 | 일상 | 트랙백 | 덧글(1)


<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